두 번째로 공개하는 인터뷰의 주인공은 지난 11월 이북으로 출간된 《어른의 연애》의 긴밤 작가님입니다. 따뜻한 시선이 담긴 일상물을 주로 쓰시는 작가님으로 유명하시죠. 넘치는 팬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만 질문드렸음에도, 우문현답으로 대응해 주신 '어른의 인터뷰'를 함께 감상해 주세요:)
인터뷰 참고 사항
- 메일을 통해 진행하였습니다.
- 중요한 내용은 질문지를 사전에 보내드려 답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드렸으며, 하기의 네 가지 안내를 인터뷰 전에 고지하여 작가님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1. 편집 과정을 거치기는 하겠지만 되도록 보내주신 문장을 살릴 예정입니다.
2. 독자분들의 작품 감상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주요 내용 스포일러를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3.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대답이 어려운 질문은 넘기셔도 상관없습니다. 혹 뒤늦게 수정하거나 삭제할 부분이 떠오르셨다면 공개 전, 한 번 더 작가님께 확인 메일을 발송해 드리오니 그때 말씀해 주세요.
4. 이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역으로 추가해 주셔도 됩니다!
- 편집자 주는 괄호 안에 * 표시를 넣은 뒤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
기나긴 밤의 시작
필명에 담긴 뜻을 알려 주세요.
낮보다 밤을, 특히 새벽 2시 전후를 좋아합니다. 고요한 분위기,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냄새를 좋아합니다. 밤늦게 깨어 있을 때면 이 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주로 밤에 글을 쓰기도 하고요. 이런 복합적인 이유가 더해져 필명이 되었습니다.
많은 장르 중 BL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BL 소설을 쓰기 전부터 소설을 쓰셨나요?
잘 쓰는 것과는 별개로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한때는 동화작가를 꿈꾸기도 했고요. 가장 힘든 시기에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서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도입만 쓰다 접었지만요.
유명한 BL 작품들을 읽다가, 어느 날 문득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일종의 현실 도피용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인 캐릭터들의 이야기
출판사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준영이 구남친처럼 구는 장면을 읽으며 진짜로 현실 비명을 질렀습니다. 때로는 한심할 만큼 감정과 행동을 꾸밈없이 보여 주는 준영은 작가님의 전작 ≪소년의 계절≫이나 ≪고백≫ 등에 등장하는 예쁜 인물들과는 다른 캐릭터로 비쳤습니다. ≪어른의 연애≫의 등장인물을 만드실 때 기존과 다르게 신경 쓰신 부분이 있나요?
너무 예쁘고 멋있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애쓰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제 글에 나오는 주인공들(특히 ≪소년의 계절≫)은 대부분 착하고 예쁘죠. 그리고 이러한 부분이 호불호로 나뉘기도 하고요. 저 스스로 그동안 너무 바르고 예쁜 캐릭터를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엔 좀 다르게 써 보고 싶었습니다.
앞서 질문드린 것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님의 전작인 ≪각자의 사랑≫을 읽을 당시 캐릭터보다 이야기를 강조하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즉, BL 장르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를 먼저 설정한 뒤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과 사람 간에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일상 배경으로 풀어내시는 것 같다는 추측이었습니다.
반면 전작에 비해 ≪어른의 연애≫는 상대적으로 이야기보다 인물이 강조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으셨을까요?
이건 제 고민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글쓰기라는 작업은 늘 어렵지만, 특히 매력 있는 캐릭터를 그려내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저에게는 숙제와도 같아요. ≪어른의 연애≫는 물론 전체적인 스토리를 먼저 구상하긴 했지만, 전작들보다는 캐릭터에 좀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큰 틀만 갖추고 그 안에서 준영이와 진하가 자유롭게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밤은 어른들의 시간
실례일지도 모르나 ≪어른의 연애≫ 인터뷰를 구성할 때 제일 먼저 이 질문부터 드리고 싶었습니다. 도구플의 반향이 이렇게 클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 (* ≪어른의 연애≫는 발매 초기부터 도구 플레이 외전이 화제가 되면서 ‘잔잔 도구물’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짧은 외전 한 편에 해당하는 분량이지만 내내 잔잔하고 현실적으로 연애한 준영과 진하라서 서로의 성적 판타지를 채워 주는 이야기가 독자님들께 유독 야하게 다가간 것 같은데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외전을 구성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혹시나 본편의 분위기를 해치진 않을까 해서요. 오히려 불호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좋게 봐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TMI를 더하자면, 의외로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침대 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준영은 진하와 사귄 후로 하고 싶은 게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도구플이었습니다. 진하는 빼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준영과의 관계를 좋아해서 처음엔 낯설어하긴 했어도 막상 침대에선 적극적으로 응했고요. 아마 앞으로도 다양한 도구를 적극 활용하지 않을까요?
작가님의 이전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천천히 감정을 나누었기에 상대적으로 성적인 관계는 뒤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어른의 연애≫에서는 진하의 성격 때문인지 비교적 빠르게 연애와 육체관계를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준영과 진하 모두 그간 남자와 관계한 적이 없었음에도 순식간에 잠자리를 해치우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른의 연애이기 때문에 의도하신 부분인가요?
글을 쓸 때 감정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그리고 전작들은 내용이나 캐릭터의 특성상 그렇게 진행되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다만, 어른의 연애는 처음 구상을 했을 때부터 전작들과는 반대로 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준영이는 진하와 재회한 순간 열아홉으로 돌아가 다시 사랑에 빠지고, 진하는 평소 성격대로 즉흥적으로 그에 응하죠. 이런 두 사람이 마음부터 나누는 건 다소 이질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진하는 왜 제모를 한 건가요? 평소 그에 관해 아무 생각 없었는데 진하의 몸 묘사는 굉장히 섹시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우선 서진하라는 캐릭터 자체가 새로운 것에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기도 하고, 왁싱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모델 지인의 권유로 해봤는데 의외로 편해서 계속 유지하는 중입니다.
서툰 연애의 완성
≪어른의 연애≫에는 K-비엘(?)답게 먹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물론 준영과 진하의 데이트 코스가 한정적인 탓도 있지만; 간식과 음료, 휴게소 음식까지 종류를 바꿔가며 계속 먹을 것이 등장하는데요. 제일 재미있게 쓰신 음식은 어떤 건가요?
질문을 보는 순간, 진하네 집 근처 해장국집에서 준영이 밥을 먹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상황들이 행복하고 유쾌한 건 아니었는데 재밌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과는 감정의 깊이가 다른 연인을 보며 불안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준영의 상황을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불안한 연애는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어렵겠죠. 진하와 준영의 마지막도 많이 고민하셨고, 수정도 여러 번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엔딩에 대한 작가님의 코멘트를 듣고 싶습니다.
엔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데요. 다만, 그 엔딩까지 가는 과정을 오래 고민했습니다. 마지막 편을 여러 버전으로 고쳐 썼던 기억이 나네요.
준영이는 진하와의 연애에서 상처를 받았고, 진하 역시 이전과는 다른 관계에 당황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과 대화가 필요할까? 그 ‘정도’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준영이가 괜찮아졌을까?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수정을 반복했습니다.
서른세 살 어른들의 연애치고 준영과 진하가 보여 주는 이야기는 서툰 구석이 많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어른의 연애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막연하게 ‘어른은, 어른들의 관계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정답은 없는 거 같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긴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어른이라고 다른 건 없는 거 같습니다.
밤을 수놓을 이야기들
잔잔한 일상물이 긴밤 작가님의 시그니처라는 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MSG 없는 작품을 주로 쓰시는데, 창작을 할 때 지켜야 할 선이나 기준 같은 것을 정해 두시는 편인가요?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소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언모럴한 소재는 특히 더요. 다만, 이걸 제가 잘 지켜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캐릭터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아픈 과거를 너무 가볍게 다루진 않았는지, 하는 생각은 늘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깊습니다. 도구화하거나 일차원적인 악역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면 어떻게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어떤 개성과 역할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에요.
소설을 창작하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자기 복제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꾸만 저에게 익숙한 방식의 글쓰기를 하려고 해서 고민입니다. 그건 서술 방식일 수도 있고 캐릭터나, 소재일 수도 있는데요. 어느 순간 더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고민 중입니다.
최근 이쪽 장르의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체성 혹은 포지션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론은 지금보다 더 재밌고, 완성도 높은 글을 쓰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오메가버스나 현대 판타지를 써보고 싶다는 작가님의 블로그 글을 읽었는데요. 그 외에도 작가로서 도전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저 작가가 이런 글도 쓰네?”라는 피드백을 받고 싶습니다. 잔잔한 일상물도 좋지만, 다양한 세계관, 분위기의 글을 쓰고 싶어요.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글도 좋고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 외에 다른 작가님들 혹은 다른 장르와의 협업 등 도전하고 싶은 건 많지만, 일단은 지금보다 잘 쓰고 싶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독자님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2018년도 약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실까요?
10편 이내의 단편을 구상하였는데, 완결 내는 게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남은 한 달을 아쉬움 없이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2019년에 신작으로 다시 만나뵐 수 있을까요? 집필 중이거나 구상 중이신 신작을 알고 싶습니다.
내년엔 본업이 더 바빠질 예정이라 확답은 드리기 어려울 거 같아요. 쓰고 싶은 소재는 많은데 이걸 잘 펼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몇 줄이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구상 중인 글을 잠깐 소개해 드리자면... 먼저, 올해 연재하려고 마음먹은 글을 절반 정도 쓰다 접었는데, 가능하다면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일상물이고 주인공수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매우 느리고 잔잔한 글입니다.
그리고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아이돌물도 구상 중입니다. 유명한 농구선수와 은퇴한 아이돌의 이야기입니다. 큰 틀은 그렸는데 자료 조사나 상세한 에피소드와 감정선 정리가 필요합니다.
일상물에 판타지적 요소를 살짝 더한 이야기도 생각 중이고요. 작고 평화로운 동네의 친절하지만, 비밀스러운 의사 선생님과 상처 많은 고등학생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고등학생의 나이가 고민입니다. 그리고 당장 내년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끝까지 용서받지 못하는 후회공이라든가 퇴마물, 동양물도 써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안녕하세요, 긴밤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던 꿈이었습니다. 꿈이 꿈으로만 남을 수도 있었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시고 좋아해 주신 독자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체력이나, 물리적 시간의 부족함이 아닌 자꾸만 작아지는 제 마음을 다독이는 거였어요. 자신감이 줄어들고 그에 반해 부정적인 감정은 커져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독자님들이 건네주신 따뜻하고 다정한 말들을 보며 힘을 냈습니다.
매번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너무 자주 말해서 형식적으로 느껴질까 봐 걱정입니다. 다른 단어나 문장을 떠올려봐도 마땅한 게 생각나지 않네요. 그런데 진심으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제 글을 읽고 즐거움을 느끼셨다는 독자님들처럼, 저도 독자님들의 감상 덕분에 행복합니다.
부디 부족한 글이지만 제 글을 읽는 시간이 독자님들의 일상에서 제법 괜찮은 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독자님들 덕분에 행복한 만큼 독자님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많이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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